박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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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덕(朴仁德, 1896년 ~ 1980년)은 한국의 계몽운동가이며 교육자이다. 친일파 인물이기도 하다. 아호는 은봉.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났다. 어릴때 아버지를 여읜 박인덕은 진남포의 기독교 계열 여학교인 삼승학교를 거쳐 이화학당의 중학과와 대학과를 졸업했다. 삼승학교 시절 친구로는 윤심덕과 김일엽이 있었다. 그는 이화학당 재학 시절부터 다재다능한 미모의 여성으로 장안에 소문이 자자했다고 전해진다 [1].
이화학당 대학과를 졸업한 뒤로는 이 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1919년 3·1 운동 때 연행되어 몇달간 구금되기도 했다. 당시 이화학당에서는 유관순 등 학생들이 3·1 운동에 대거 가담했기 때문에, 이들의 스승 중 신준려와 박인덕이 학생들을 선동한 교사로 지목된 것이다. 박인덕은 그해 말에는 대한애국부인회에 참가한 것이 확인되어 한차례 더 투옥되었다.
1921년 부호인 김운호와 결혼하였으나, 결혼 생활이 순조롭지 않자 1926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웨슬리안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학 중에 김마리아, 황애덕 등과 함께 민족주의적인 여성 유학생 모임인 근화회를 조직하여 국내 정세를 외국인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하였다. 해외 선교 를 위한 학생자원운동에 가담하여 미국와 유럽을 순회하며 강연을 하고 1931년 귀국했다.
이후 농촌 계몽과 여성 계몽을 위주로 사회 활동을 하던 박인덕은, 친일 단체 녹기연맹(綠旗聯盟)의 지원으로 1941년 덕화여숙(德和女塾)을 설립하면서 1945년 광복 시점까지 약 4년간 적극적인 친일 행적을 보인다. 조선임전보국단회에 참가하여 연설회와 좌담회에서 전쟁 지원을 역설했고, 《매일신보》, 《신시대》에는 친일 논설을 실었다. 종전 직전 조선언론보국단에도 참여했다.
광복 후에 우익 여성 단체인 독립촉성애국부인회에 가담하면서 미군정에 의해 국제부인대회 대표로 미국에 파견되었다. 1950년대에는 미국에 주로 머무르면서 강연을 하고 자전적 영문 소설 《9월의 원숭이(September Monkey)》(1954)를 출판했다. 저서로 이 책의 후편격인 《The Hour of the Tiger》(1965), 《The Cock Still Crows》(1977)과 속담집인 《The Wisdom of the Dragon》(1970)가 있다.
1962년 인덕실업학교(인덕대학의 전신), 1964년 인덕실업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이사장을 지냈다.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파 목록의 교육, 학술부문을 비롯하여 친일단체, 전쟁협력 등 세 가지 부문에 포함되었다.
[편집] 가족 관계
- 남편: 김운호 (이혼)
- 딸: 김혜란 (전 인덕전문대학 학장)
- 딸: 김혜련
[편집] 각주
- ^ 《신동아》 (2006.4.1) 조선의 ‘노라’ 박인덕 이혼사건
분류: 1896년 태어남 | 1980년 죽음 | 대한민국의 교육인 |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