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태영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함태영(咸台永, 1873년 3월 25일 ~ 1964년 10월 24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가이다. 아호는 송암(松岩).
전라북도 김제 출생이다. 법관양성소를 졸업하고 한성재판소에서 검사시보로 법조계 근무를 시작했다.
한일 합병 조약 체결 이후 판사직에서 물러나 있던 중, 1919년 3·1 운동에는 민족대표 48인 중 한 사람으로 참가했다. 기독교 세력을 중심으로 천도교와 연합하는 기획 과정부터 깊이 개입했으며, 주동자로서 징역 3년형을 선고 받았다.
출옥 후에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장로교 목사로 일했다. 한국 전쟁 중이던 1952년, 이승만의 지원으로 80세의 나이에 대한민국 제3대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1983년 아웅산묘역 폭탄테러사건 때 사망한 함병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함태영의 막내 아들이다.
전 임 김성수 |
제3대 대한민국의 부통령 무소속 1952년 8월 15일 - 1956년 8월 14일 |
후 임 장면 |
이 문서는 사람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