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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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군(大韓民國 陸軍, ROK Army, 약어: ROKA)은 대한민국의 지상군 전력으로서 대한민국 국군의 3군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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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역사
[편집] 창설기
일제강점기 시대의 독립군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을 기원으로 삼기도 하지만, 실질적인 대한민국 육군의 시작은 남조선국방경비대와 미군정이 설립한 군사영어학교가 모태이다.
[편집] 한국전쟁 중
한국전쟁 초기 대한민국 육군은 개성 방면의 국군 1 보병사단(사단장 : 백선엽 대령)과 춘천 방면의 6사단 (사단장 : 김점곤 대령)을 제외하면 나머지 사단급 부대 모두 괴멸당하는 패배를 겪고 밀려나야 했다. 중국 국민당군 3성 장군 출신의 김홍일 장군이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를 조직하여 임시로 패잔병들을 수습하였으나 전쟁 초기 상기 2개 사단과 웅진 반도에 주둔하고 있던 17연대를 제외하면 사실상 조직적인 군사행동은 불가능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초기 창군 과정에서 장교들이 고속 승진을 거듭한 끝에 장군이라고 해봐야 김홍일 장군을 제외한 나머지 장성들이 20대 후반 ~ 30대 중반이었던 관계로 지휘 경험과 대규모 군대 운영 및 행정 경험이 일천하여 전쟁 기간 내내 지휘력, 전투력 부족 문제로 시달려야 했다. 사단급 부대가 다시 10개 사단으로 늘어난 후에도 군단 편성이 늦어진 점이나 편성된 군단도 다른 나라 "군단" 급 부대에 비하면 보병사단 3개를 모아둔 것에 불과할 뿐 군단으로서 전투력을 가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실제로 이들 1, 2군단은 모두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고, 현재의 1군단은 1952년에 지리산 공비 토벌전을 위해 임시 편성인 Task Force 성격의 백야전사령부를 모태로 새로 창설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한국군은 투지는 강했으나, 훈련의 양과 질, 장교의 지휘 능력, 보유 장비 등에서 부족함이 많았다. 백선엽은 회고록에서 "1개 보병사단 전체를 105mm 1개 포병대대가 지원하고, 연대는 4.2인치 박격포 중대가 지원하는" 상황이었다고 술회했다. 당시 미군 보병사단은 1개 155mm 대대와 3개 105mm 대대로 사단 포병을 구성하고 있었다(현재 한국군의 1개 사단 당 포대는 155mm 자주포 내지는 견인포로 1개 연대 정도다. 물론 편제에 따라서 다소 차이가 있으며 105mm포는 지역 예비군만 사용할뿐 현역 사단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1951년 이후 미국이나 대한민국 모두 한국군의 군사력 증강을 위하여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도 NATO의 창설과 염전 분위기 등으로 인해 한국에서 병력을 빼야 하는 상황이었다. 백선엽의 회고록에 따르면 1951년까지 미국과 이승만은 증강에는 동의했지만, 그 방식에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승만은 기존 10개 사단 외에 10개 사단 추가 증설을 위한 지원을 요구했고, 미국은 기존 사단들도 전투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데 무슨 10개 사단 증설이냐면서 기존 사단들의 전투력 배양이 먼저라고 맞받아쳤다. 즉, 양이냐, 질이냐에서 이승만은 전자를, 미국은 후자를 주장한 것이다.
이 와중에 현리 전투에서 한국군(3군단)은 맥없이 패배하여 수십Km를 후퇴했고, 이웃한 미군 사단들이 급히 수습에 나서야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이 보여준 무기력한 모습은 결국 미국 제8군 사령부와 유엔군 사령부의 중대 결단을 낳게 했다. 당시 육본은 최전방에 전방지휘소를 두고 국군 군단에 대해 어느 정도의 작전지휘를 하고 있었다. 1950년 7월 협정으로 이승만이 미국에 한국군의 전체 지휘권을 넘겨주었지만, 미군은 적당히 융통성을 발휘해 육본의 독자 지휘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전방지휘소 뿐만 아니라 3군단마저 폐지하고 모든 한국군 사단을 미군 군단에 배속시키게 된다. 군단급 이상 상급 부대가 모두 폐지된 것은 한국군에게는 치욕이었으나, 이승만도 미군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전쟁 중 한국군의 1차 증강은 미군의 주장에 따라 기존 사단들의 전투력 배양과 장교에 대한 교육 과정 강화를 우선 사업으로 시작하게 된다.
[편집] 전후 재편과 발전
2004년 현재, 한국 육군은 K1, K1A1, T-80U 등 최신예 전차를 1180여대 보유하고 있으며, 차기전차인 K-2 전차를 XK-2라는 프로젝트 명으로 개발중에 있다. 한편, 공중기동전력의 확보를 위해 한국형 헬기 사업((Korean Helicopter Program, KHP)을 추진하고 있다.
[편집] 베트남 전쟁 참전
[편집] 율곡 계획과 육군
[편집] 유엔평화유지활동차원에서 해외파병
[편집] 아픈 역사
[편집] 조직
2006년 현재 3개 야전군 체제로 유지되고 있으며, 3개 야전군 외에 별도로 한미연합사령부가 있다. 한미연합사령부는 전시 작전을 총괄하는 기구이며, 산하에 대한민국군과 미 8군을 예하에 둔다.
[편집] 주요 장비
[편집] 개인화기
[편집] 기갑장비
- K55 자주포
- K9 자주포 및 K10 탄약보급차량
- K1 전차 및 K1A1 전차
- T-80U
- K200
- BMP-3
- KNIFV
- 바라쿠다 장갑차
- KM6614 차륜 장갑차
- KM9 전투공병차
- 천마 대공미사일
- 비호 자주대공포
[편집] 화포류
- KH-179 155mm 견인포
- MLRS
- 구룡 다련장포
- K-55 자주포 - 미국의 M106A2를 삼성항공에서 라이센스 생산한 것
- K-9 자주포
- K-10 탄약보급차
- 기타 박격포
[편집] 일반 차량류
[편집] 항공전력
[편집] 주석과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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